각인.

처음 본 것이 그대로 몸과 마음에 남아 평생을 가는 것.

마치 사람을 엄마로 착각해 따라다니는 오리새끼처럼

꼬마도도 금멱에게 작은 수경 밖 세상을 처음 알려준 사람은 바로 봉황

 

그래서 1회에서 봉황이 하늘을 날아 금멱을 수경 밖 세상으로 데려가는 건 지금 생각해보니 굉장히 의미 있는 씬이었던 것 같다

 

금멱이 보는 세상은 바로 봉황의 소매 안 세상

즉 금멱의 모든 처음은 바로 봉황이 보여주고 알려주고 가르쳐준 것들

차곡차곡 쌓은 수련부터 글자까지, 누군가를 사랑하고 원망하고 그리워하고 그를 위해 희생하는 것까지 모두

 

봉황의 소매 안에만 있었다면 금멱은 누구보다 안전했겠지만

영원히 꼬마도도로 머물 수밖에 없었겠지

소매밖 세상이 그러나 꼬마도도에게 설사 그게 삼중천 위라 해도 안전할 수 있었던 건,

언제나 나를 지켜줄 거라는 봉황에 대한 믿음 하나 때문

 

봉황의 세계 안에, 봉황이 보여주는 안전한 세계 안에만 머물러 있다면 아마 편안했겠지만

그래서는 아마 꼬마도도에서 성장할 수 없었을 것 같음

알을 깨고 나와야 성장할 수 있는 것처럼 가장 사랑하는 사람, 자신에게 전부였던 세계를 파괴함으로써

금멱은 아픈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함. 물론 이건 봉황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렇지만 이때 봉황과 함께 했던 세상은 금멱의 고향과 같은 것이 되어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가고 싶은 그런 것이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다만 그때는 꼬마도도가 아니라 성장한 서리꽃 금멱일 테니까

 

그렇기에 금멱이 마침내 모든 오해가 풀렸던 순간에

그리고 죽기 직전에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냐고 묻고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 것 같음

 

봉황과 함께 하는 세상을 모두 깨부숨으로써 아프게 성장했지만

결국 금멱 마음의 고향은 그때 그 세상, 봉황이 보여주고 봉황 품 안에서 안전했던

꼬마도도의 세상

모두가 미워하지 않고 안전하고 행복했던 그 세상이었고

그렇기에 그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 같다

 

그곳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처절하게 아프고 고통스러운 금멱이 아니라

마냥 천진하고 행복하던 그 시절 금멱, 봉황이 반했던 그 쾌활하고 행복했던 금멱을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아서

그럼 그때처럼 봉황과 행복할 수 있을 것도 같아서

 

오백년 후에 환생한 금멱에게 여전히 세상의 모든 것은 봉황이다

봉황이 마존일 때 죽었기 때문에 봉황이 마존인 것만 기억하니까

신선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귀가 되기 위해 수련했던 금멱

금멱의 모든 세상은 여전히 봉황이구나

 

마침내 돌아온 금멱

 

"내가 왔어"

그토록 기다리던 봉황이, 그리웠던 그때 그 모습으로 나타났다

 

명색이 열매가 되어 새와 똑같을 수 있나

 

명색이 열매가 돼서 새랑 똑같이 굴 순 없지

금멱이 죽어가면서도 하던 그 말, 그건 금멱의 '본모습' 같은 것이다

봉황의 세상 안의 금멱, 그때의 금멱의 모습

 

금멱이 돌아온 것을 이로써 완전히 확인한 봉황, 울컥한다

그리하여 그때의 봉황으로, 대답한다 

"6천년치 영력을 가져왔는데"

영력에 죽고 못살던 꼬마도도, 봉황이 그토록 사랑했던 꼬마도도, 

결국 봉황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하여 이건 금멱에게 완벽한 해피엔딩인 것 같다

봉황이 어디에 있든, 그곳이 천계이든 마계이든 인간계이든

봉황이 있는 그곳, 봉황의 세상이 곧 금멱의 세상이고 금멱의 세상이 곧 봉황의 세상이니까

아무것도 부족한 것도 아무것도 모자란 것도 아무것도 후회될 것도 없다

 

금멱은 고향으로 돌아왔으니까 

금멱의 영원한 고향, 봉황의 세상으로

그곳이 어디이든 봉황이 있는 곳,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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