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가 뭔가 심상치 않다. 아니나 다를까, 3회에서 누가 산의 편이고 누가 산의 편이 아닌지가 나온다.

 

책을 읽어 어떻게 궁녀들을 구하나 했더니, 산이 말마따나 덕임이만 할 수 있는 거였다. 덕임이가 책을 읽어준다고 해야 사람들이 재미있게 놀던 것을 멈추고 달려오니까. 책을 읽어주겠다는 핑계로 사람들을 모은 덕임은 아무 책이나 들고 아무 말이나 한다. 그런 후 그전에 연습을 해야 하니 출생 순서대로 문을 나가라고. 뭔 말인지 모르겠으나 순순히 따르는 궁녀들. 중간에 어린 생각시가 울면서 달려오고 호랑이 소리가 들려 아수라장이 될뻔 했으나 서상궁의 기지로 그 많은 궁녀들이 크게 다치지 않고 모두 무사히 빠져나간다.

 

여기서 덕임이 읽어주려던 책이 '운영전'인데, 이 책의 내용은, 궁녀가 선비와 비극적인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아무 책이나 가져와 되는대로 말한 게 운영전이라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시들을 구하러 갔다가 호랑이와 마주친 덕임. 실제로 호랑이를 마주치면 그 무시무시한 안광과 기운에 압도되어 꼼짝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덕임은 너무 큰 공포에 질려 옴짝달싹 하지 못하고 호랑이가 달려들려는 찰나, 어디선가 날아온 불화살이 호랑이를 쫓아낸다. 진짜 지척까지 내려와 있었던 것이다, 호랑이가. 덕임이 궁녀들을 빼내지 않았다면 호랑이에게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을지 모를 일이다.

 

상한 곳은, 상한 곳은 없느냐? 걸을 수는 있고?

 

이 다급한 와중에 덕임을 구해주고 덕임의 상태를 묻는 산은, 다정하기까지 하다. 실제로 정조는 명궁이었다고 한다. 50번을 쏘면 49번을 명중시키고 너무 다 잘 하면 겸손하지 않은 거라 여겨 한 발은 일부러 빗겨 쐈다는 전설의 명궁.

 

아버지인 사도세자만큼 무를 숭상한 것은 아니나, 정조는 문무에 모두 뛰어났던지라 신하들에게도 활쏘기까지 잘 하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그중 채제공과 정약용은 활쏘기에 뛰어나지 못하여 만날 구박받았는데, 채제공은 무수한 연습 끝에 활쏘기를 제법 잘 할 수 있었고 정약용은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두사람이 각자 일기 같은 기록에, 채제공은 역시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게 없다 으쓱으쓱 이었던 반면, 정약용은 그깟 활쏘기 선비에게는 글 읽는 게 더 중요하다 웅얼웅얼 비슷했다는 게 내 웃음벨. 

 

위급한 순간인지라 서둘러 떠나야 하지만 그 찰나에도 서로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산은 덕임이 잘 걸을수 있는 것을 확인하고 떠나고, 덕임은 가다가 위험한 곳으로 떠나는 산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부디 무사히길 바라며.

 

하, 개머싯서.... 위에서 내려찍는 이 각도 넘나 사랑한다.

 

서투른 솜씨로 쪄본 이 움짤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3회 시청할 때는 정신 놓고 보느라 몰랐는데 4회까지 보고 다시 이 장면을 보면, 산이 쏘는 화살 말고 화살 한 대가 더 산을 빗겨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호랑이 사냥을 하는 이 중차대한 시점에 산을 사냥하려는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다.

 

산은 호랑이를 잡는다. 이것으로 잘 마무리되나 했으나 그럴 리가.

 

겸사서 나으리가 출근할 때마다 들러 물을 마신다는 우물가에서 산을 기다리는 덕임. 무사히 호랑이를 잡은 것 같은데 미처 고맙다는 얘기를 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서라고 하지만............. 산이 무사한지 확인하고 보고 싶은 것이다. 벌써 산을 떠올리기 시작하는 덕임.

 

5회 방영 전까지 산과 덕임의 감정을 잠시 짚어볼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때 이미 산과 덕임은 서로에게 상당히 많이 스며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구해준 산을 떠올리는 덕임의 얼굴에 약간의 설렘과 홍조가 지나간다.

 

진짜 겸사서 홍덕로와 마주친 덕임은, 호랑이를 잡아 상을 받기는커녕 호랑이 사냥에 나선 동궁과 사냥에 참여한 모든 이가 벌을 받는다는 얘기를 듣는다. 조보를 읽을 줄 아는 덕임 짱멋있어.

 

이게 당최 무슨 소리인가. 그럼 궁녀들이 호랑이 밥이 되고 나서야 허락해 줄 거였느냐는 덕임의 말에 차라리 희생이 좀 있고 나서야 그 다급함을 인정받아 벌을 면할 수 있었을 거라 중얼거리는 덕로... 인성 보소. 여기에서 이미, 자신의 성공(즉, 산이 무사히 즉위하는 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덕로의 성정이 잘 드러난다. 실제로 홍덕로 즉 홍국영은 정조의 즉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베팅한 인물이기도 하다.

 

덕임이 말하는 겸사서가 자신이 아님을, 그리고 산이 덕임에게 겸사서 노릇을 했음을 단박에 눈치채는 덕로. 찾아보니 겸사서는 한 명뿐이란다. 그러니 덕임이 겸사서를 찾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던 것이다. 

 

자신과 가장 가깝다 생각했던 주군이, 자신이 모르는 일을 벌였다. 일개 궁녀에게 겸사서 노릇이라니. 도대체 이 궁녀와 저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쎄한 느낌은 잘 들어맞는 법이다. 덕로는 본능적으로 덕임이 산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될 것임을 눈치챈다. 산과 자신에게는 다른 의미겠지만.

 

호랑이를 잡을 수 있다면 용도 잡을 수 있겠지요.

 

이제 산의 적과 동지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좌의정 홍정여, 즉 홍인한. 홍인한은 혜경궁의 작은아버지로 세손의 즉위를 앞장서서 반대하다가 정조 즉위 후 몰락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내내 쎄했던 제조상궁은 홍정여와 함께 세손을 끌어내릴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영조의 막내딸 화완옹주 역시 세손의 반대편에 있는 인물이다. 제조상궁을 제외하고 모두 역사적으로 정조의 반대편에 섰던 인물이며, 정조 즉위 후 몰락하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산의 생각에 심란하던 덕임은, 책을 빨리 필사해 영조에게 바치고 동궁을 구해달라 청할 것이라는 군주들의 말에 힘을 낸다. 동궁이 용서를 받으면 동궁과 함께 사냥에 나섰던 사람들도 용서를 받을 것이니.

 

산이 밤낮으로 대전 앞에서 석고대죄를 드릴 동안 덕임은 산을 구할 생각에 밤을 새워가며 필사를 하고 책을 완성한다. 그러나 늘 군주들을 예뻐하던 영조였으나 이번에는 알현을 허락하지 않고 군주들을 방편을 찾아내기 위해 중전을 찾아간다. 

 

그동안의 드라마나 영화 때문에 정순왕후와 정조가 적이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쪽에 가깝다. 정조 승하 후 정순왕후가 어린 순조 대신 대리청정을 하며 정조의 사람들을 귀양 보내고 숙청하고 정조의 정책 일부를 폐기하기는 했으나, 정조와 정순왕후는 세손 시절부터 승하할 때까지 그렇게 나쁜 사이가 아니었다. 정조는 독살당하지 않았으며, 승하할 때 즈음에 이르러서는 정순왕후를 불러 뒤를 부탁하기도 했다. (순조가 어렸으므로) 적극적으로 세손의 편을 들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세손의 즉위를 막지도 않은 지금 이 스탠스가 역사적인 정순왕후의 스탠스에 가장 맞는 편이다.

 

군주들은 대전에 들어갈 수 없으나 덕임이까지 안 된다고 하지는 않았으니 덕임이 네가 갈 수 있다는 현명한 계략을 내준 정순왕후. 제조상궁은 아리까리한 말로 세손을 구명하지 말라는 식으로 충고하고, 덕임은 고민 끝에 일단 영조를 알현하기로 결심한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아, 선택이라는 것을 하고 싶어.

 

덕임의 소원이 벌써 이루어지는 모양새다. 덕임은 여기서 굉장히 큰 결정을 한 것이다. 일개 생각시가 임금을 만나 동궁의 용서를 구한다니, 잘못하면 목이 달아날지도 모른다. (더구나 상대는 아침저녁 기분이 다른 영조) 임금이 용서하지 않는 동궁을 일개 생각시가 나서서 용서하라 마라? 덕임은 큰 결심을 한 것이다.

 

대전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세손. 어쩐지 겸사서 같은데, 근데 쟤는 세손이라 그러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덕임. 하긴 너무 멀어서 얼굴이 잘 안 보이기는 하다....

 

밖에서 자신의 손자가 밤낮을 엎드려 석고대죄를 하고 있는데 어느 고추장이 맛있느냐 재고 있는 영조. 이건 사실 모두 굉장히 정치적인 행위다. (영조가 순창 고추장을 무척 좋아해 밥 먹을 때 꼭 고추장이 있어야 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기는 함) 홍정여를 비롯한 신료들의 입에서 세손이 왕을 무시한다는 발언이 나온 지금 섣불리 용서하면 자신의 권위에 대든 모양새인 세손에게 왕의 권위를 보여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세손이 벌을 청하는 모양새여야 한다.

 

군주들은 조바심이 나서 덕임까지 들여보내며 난리를 쳤지만, 영조처럼 노회한 영감이 그런 계산을 안 했을 리가 없다. 자애로운 할아버지인척 자신이 좋아하는 고추장을 맞춘 덕임에게 가래떡을 상으로 내리는 영조.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영조의 말에 산의 모습을 떠올리는 덕임. 덕임의 마음에 산이 얼마만큼 스며들어 있는가가 보이는 장면이었다. 자신을 구해주었던 모습이 아니라 서고에서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냥 겸사서 그 자체가 좋아진 것. 자신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산을 구하려는 것이라기보다, 산이 무사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 자체로 동궁을 용서해달라 말한 것인데, 말하자마자 바로,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설정해 놓은 기준이 있는데 감히 일개 생각시 따위가 용서를 청하다니, 영조는 분노한다. 덕임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전기수라는 사실이 여기서 유용하게 먹힌다. 덕임은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으며 살려달라 청한다. 영조가 마침 한 냥을 주어 백 냥이 된 시점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역피셜로 덕임의 아버지는 혜경궁의 친정 청지기였다. 집안이 몰락하고 어려워지자 혜경궁이 거두어 딸처럼 키운 것인데, 드라마에서는 덕임의 아버지가 역적이었던 것으로 나온다. 사도세자를 모시다 사도세자가 죽으면서 함께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데, 아무튼 자신의 절절한 이야기로 영조의 마음을 움직여 살아남는 데 성공한다.

 

애초에 죽일 생각 없었다는 영조. 아니 그러기엔 너무 무서웠잖아요..... 때를 기다린다는 영조의 말에서 모든 수를 놓고 움직이는 영조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의 권위에 감히 대항한 세손에게 화가 난 것도 있지만, 세손이 진짜 위험했을 수도 있다는 데에 빡친 것도 맞다. 주변에서 보지 못하게 가린 후에야 산을 안아 다독이는 영조.

 

끝내 잘못했다고 하지 않는 산이나, 토닥토닥 다독이면서 사실은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영조나 그래, 니들 할아버지와 손자 맞다 싶다.

 

그리하여 풀려난 산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서고다. 

 

아니, 저하.... 덕임이가 언제 그렇게 예쁘게 웃어줬단 말입니까. 언제나 치고박고 으르렁대지 않았어요? 그런데 산의 기억 속에서 덕임이는 상당히 미화되어 있다. 자신도 모르게 덕임의 환영을 보고 저도 모르게 웃는 산. 이미 빠져있는데요, 저하...... 

 

어려움에 처했을 때, 위기를 극복하고 나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 보고 싶은 사람이 덕임이다. (덕로 아님)

 

하... 이 장면 왜케 짠하지... 왠지 나아중에, 산이 덕임을 보내고 나서 이런 식으로 덕임을 찾아다닐 것 같아 더욱 마음이 찌르르르하다.

 

영조의 무시무시한 압박 속에 기절했다 깨어난 덕임이 제일 먼저 찾은 곳도 서고다. 세손이 용서받았으니 겸사서도 풀려났겠지, 산이 보고 싶어 한달음에 서고로 달려간 덕임.

 

니들 똑같아... 눈 뜨자마자 보고 싶은 사람, 그거 사랑이야... 사랑이라고오....

 

청연군주가 덕임이를 이끌고 세손에게 달려간다. 청연군주 입장에서는 덕임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르고 아무튼 덕임이 용서를 청한 후 오라버니가 용서를 받았으니 덕임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오라버니에게 칭찬을 듣게 하고 싶어 데려갔을 텐데.

 

내 귀가 잘못됐나? 지금 덕임이라고 했어?

 

나중에도 나오지만, 산은 정말 궁녀들이나 주변에 전혀 관심이 없다. 청연군주가 누굴 데려왔는지 쳐다보지도 않고 청연군주에게 잔소리를 하다 뒤늦게 눈치챈 것이다.

 

아니 내가 아직 쟤한테는 겸사서란 말이다. 아직 들키면 안되니 빨리 부채를 달라는데 세손 저하께서 더우시다는 좌익위, 아 그러시군요 부채질을 하는 내관, 오라버니 더우셔요 묻는 청연군주.... 대환장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급히 얼굴을 가리는 산.

 

언젠가는 자신의 정체를 말할 생각이긴 했을까, 산은. 들키고 나서 덕임과 얘기하던 산의 모습으로 보건데, 가능하면 아주 오랫동안 말 안하려고 했던 것 같다. 자신이 세손일 때 덕임이 어떻게 할지 불보듯 뻔했고, 덕임과의 편안한 시간을 가능하면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었던 것 같으니.

 

아니 근데 무슨 연못 물이 4K잖아요.........

 

이렇게 서로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는 후문이.... 캬아! 아니 이게 뭐야. 이렇게 정체 알아채는 드라마 난생 처음이야. 

 

아니 저 얼굴은 겸사서인데... 세손 저하잖아.

 

충격과 배신감이 동시에 어리는 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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