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는 지금까지(6회까지 방영된 이 시점까지) 이 드라마의 가장 강력한 회차이자 두사람의 관계에 대한 강한 암시를 담고 있다. 엔딩 시퀀스 때의 전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5회는 결국 산의 고백으로 시작해 덕임의 고백으로 끝나는데, 두사람의 앞으로의 관계가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대단히 은유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도록 보여준다.

 

덕임이 뒤를 쫓았다는 것을 산이 알게 되는 이 부분은, 정말 예상치 못한 흐름으로 흘러가 벙 찌면서도 너무 웃겼다...ㅋㅋㅋㅋ 덕임과 산의 관계가 어떠한지 이처럼 극명하게 보일 수가 없다ㅋㅋㅋㅋㅋ 순간순간 돌아가는 덕임의 비상한 두뇌와 알면서도 결국 받아주는 산. 덕임이 한 말이 전부 다 살아남기 위한 변명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톤이 좀 과장되어 그렇지.

 

덕임은 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4회에 산이 세손임을 알고 납작 엎드리긴 했으나 결국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다 쏟아냈던 덕임이다. 기본적으로 겸사서와 생각시로 같이 보낸 시간의 특별함과 두텁게 쌓인 신뢰가 덕임이 산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 원동력인 것이다. 산 역시 덕임이 자신을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멀리 하게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기에 덕임이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하는 느낌이다.

 

그리하여 무시무시했던 4회 예고의 출궁은... 10분컷도 아니고 그냥 말로만 끝났어...ㅋㅋㅋㅋㅋㅋ 덕임이 살아남고 용서받으려고 마구 해대는 아부 같은 말에도 녹아내리는 저하...ㅋㅋㅋㅋㅋㅋㅋ 산은 오히려 덕임을 동덕회에 데려가 입회시킨다. 

 

이 부분 역시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저 됐다 하고 보내줄 줄만 알았던 얄팍한 나... 산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단번에, 설명하지 않고도 보여주고 또한 덕로를 권위로 찍어누른다. 이때는 덕임이 자신이 하는 일을 도와줄 거라 믿거나 기대하고 데려간 것이 아니다. 덕로에게 경고하는 의미도 있고, 덕임에게 자신이 기생을 만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미도 있고, 자신이 하는 일을 덕임이 발설하거나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있다.

 

여기서 이미 산이 덕임에 대해 다 알아봤다는 게 나와서 또 깜짝 놀랐다. 증좌가 없어 그냥 넘어간 게 아니라 그후에 덕임이 어떤 사람인지 세작 노릇을 하는지 아닌지 알아보고 나서 서고에 자주 들러 편안한 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래야 하는 게 당연하다. 이미 덕임을 믿을 만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그후에 함께 한 시간이 그위로 쌓인 것이었다.

 

이왕 이렇게 궁밖에 나와 덕임과 마주하니 어쩐지 설렜나 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덕임에게 사줄 것이 있다고 웃으시는 세손 저하 표정이 너무 예쁜 거 아닙니까... 그리하여 덕임을 서점 같은 곳으로 데려간 산은...

 

신간 패관소설 코너 훑고 있는 덕임에게 동국문헌비고, 시경 등등을 안겨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려주면 너도 좋아하겠지, 란 지극히 세손 저하다운 발상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제로 정조는 패관소설을 몹시 극혐하여 문체반정을 일으킬 정도였고, 패관소설 문체로 글을 짓는 신하들을 문책하고 반성문을 지어 올리라 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정조 자신이 신하들을 발라버릴 정도로 뛰어났고 그러니 신하들을 그렇게 찍어누를 수 있는 것이고, 신하들은 명분도 실력도 반발할 처지가 못되었던 것이다.

 

아니 그래도 나름 첫 데이트라고 설레하며 데려간 곳에서 백과사전에 교양 서적이라뇨 저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썸남이 나와 첫 데이트로 서점 가서 <사피엔스>나 <정의란 무엇인가> 이런 거 사주면서 왜 기뻐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뭐라 해야 하나요......

 

자신을 그때의 그 겸사서로 여겨 편하게 대하고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는 산. 겸사서인척 덕임을 속이며 보냈던 시간을 짚어본다.

 

사실 산은 자신의 마음이 왜 이렇게 요동치는지, 왜 덕임에게만 유난히 이렇게 물러지는지,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그 마음을 똑바로 들여다보거나 그 마음의 정체를 알려 하지 않았을뿐. 그런데 이 순간이 닥치자, 더는 회피하고 싶지도 모른척 하고 싶지도 않아진 것이다.

 

"서고에서 너와 보낸 시간이, 특별했으니까."

 

덕임과 함께 보냈던 그 시간, 두 번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시간, 세손의 무거운 책무와 위협과 어려움을 잠시 내려놓고 잊을 수 있었던 그 시간, 그 시간이 산에게는 무척 특별했다. 그래서 산은 알게 된 것 같다. 그 시간이 그럼 왜 내게 특별했던 것일까.

 

"네가 나에게 휘둘렸느냐, 아니면. 내가 너에게 휘둘렸느냐."

 

이 말을 하면서 산은,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들여다보게 되고 인정하게 된 것 같다. 그후에 곧바로 어머니 혜빈에게 가 덕임은 자신의 사람이니 건드리지 말라 단호하게 말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 때문에 혜빈 역시 덕임에 대한 산의 마음을 눈치챘다. 

 

산의 고백 아닌 고백은 덕임의 마음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덕임 역시 왜 산이 왕세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편하고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 믿었던 것인지, 산이 겸사서인 줄 알았을때 왜 그토록 필사적으로 구하려고 위험한 일까지 했던 것인지, 산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왜 그토록 화가 났는지(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무슨 짓을 하건, 그 시대상으로는 그저 납득할 수밖에 없는데도) 덕임 역시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책을 받아 돌아온 날 밤에도. 친구들과 함께 원삼을 입어보려 했던 것도 잊어버린다. 산의 마음을 눈치챘는데도 설마 설마 싶다. 정말 그렇다고? 저하가, 나를...?

 

믿을 수가 없는 때에 결정적 한 방이 터진다. 산의 생각에 심란해 옷을 입어보고 연습하는 데에도 떨어져 나와 혼자 있는데 갑자기 산이 달려와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임금의 승은을 입은 것이냐며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이때의 산은 앞뒤 구별조차 못할 정도로 그저 덕임만 보고 달려온 것이다. 그 냉철한 산이, 그 똑똑한 산이, 그저 덕임이 머리를 올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눈앞이 캄캄해져서는. 

 

아직도 눈알 굴리다 냅다 도망가는 세손 저하만 생각하면 너무 웃긴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웃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으니, 덕임과 덕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덕임과 덕로는 산의 마음을 확신하게 된다.

 

이 결정적인 사건은 덕임의 마음의 파도를 넘치게 만들었다. 산이 잡았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덕임. 결국 밤새 잠을 못이루고 뒤척이다 계례식에 늦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생에 한번뿐인 날이라 설레서가 아니라 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설렌다. 어쩔 수 없이 떨린다. 세손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야 봇물처럼 흘러내리는 덕임의 마음. 안심하고 내보이는 덕임의 연심. 

 

산은 덕임의 계례상을 받을 생각에 설레고, 덕임은 산에게 계례상을 올릴 생각에 설렌다.

 

궁녀들은 기본적으로 왕의 여자다. 평생 다른 누군가와 혼인할 수 없고 그건 출궁해서도 마찬가지다. 칠백의 궁녀가 오직 왕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고 왕을 모시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일생에 한 번, 정식 여관이 되기 전, 왕과 혼례를 올린다는 의미로 계례식을 치러주는 것이다. 특별히 원삼도 하사하고 머리 장식도 꾸밀 수 있게 해주고. 다만 동궁에 주인이 있으면, 동궁의 궁녀들은 혼례를 올리는 대상이 왕이 아니라 동궁이 된다. 

 

이건 그냥 계례식이 아니었다. 산은 덕임과, 덕임은 산과, 혼례를 올리는 것이다. 두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고, 그래서 들떴다. 명목상의 계례식이 의미를 지니고 성큼 다가온다.

 

그런데 혜빈은 그걸 용납할 수가 없다. 혜빈 홍씨, 즉 우리가 혜경궁 홍씨로 알고 있는 정조의 어머니는 조선 왕실 역사상 가장 파란만장한 삶을 보낸 사람중 하나다. 남편이 미쳐 날뛰다 아버지에 의해 죽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여인. 남은 아들을 지키기 위해 남편 대신 아들을 택했던 여인.

 

혜빈은 누구보다 냉정하다. 감정 따위는 없다. 그저 아들을 지킬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중차대한 시기에 산이 궁녀에게 흔들리고 궁녀에게 승은을 내리기라도 한다면, 그게 영조의 귀에 들어간다면, 반대파들에게 빌미를 주게 된다면... 생각도 하기 싫은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산은 그저 정석대로 대답했을 뿐인데.

 

산과 덕임 모두에게 큰 상처가 되고 말았다. 붕 떴던 마음이 와장창 깨지고 가라앉는다. 

 

산은 끝까지 세손으로서의 위엄과 품위를 잃지 않는다. 지금 그 어떤 말도 어떤 위로도 건넬 수 없는 것이 산의 위치이고 산의 한계다. 

 

어머니에게 말하는 것을 보면, 산은 아직까지 덕임과 뭘 어찌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사대부가 여식이 어쩌고 저쩌고는 어머니의 비위를 맞춰 어머니를 안심시키려 한 말이지 산의 본심도 아니고. 그저 산과 덕임은, 이제 막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고 설레고 들뜬 청춘들이었을 뿐이다. 미래가 어떻고 그래서 그다음엔 저떻고 그런 것까지 생각하지 못한, 그저 사랑에 들뜨기 시작한 청춘이었을뿐. 

 

그 들뜬 마음에 찬물을 부으며, 혜빈은 두사람에게 현실을 보라 한 것이다. 

 

산은 혜빈을 찾아와 덕임을 건드리지 말라 경고했다. 혜빈은 굳이 덕임을 불러 그 사실을 말해준다. 덕임은 산의 마음을 다시 깨달으면서 동시에 산과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도 깨닫는다. 

 

자신은 궁녀이고, 산은 왕세손이다. 산이 짊어지고 있는 것, 산이 처한 현실, 산이 나아가야 할 길에 자신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뼈저린 자각. 산의 마음을 깨닫는 것은, 덕임에게 상처가 된다.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마음을 붙잡아야만 한다. 덕임은 산에게 화가 나거나 삐치거나 서운한 게 아니다. 그런 얄팍한 감정이 아니다.

 

덕임에게는, 산의 옆에 있을 수 있는 그 어떤 핑계가 좋은 핑계가 필요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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