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다음회가 그 대망의 '장난스런 키스'가 일어나는 회차인데, 그때는 이미 나오키가 질투로 눈이 뒤집어져 있을 만큼 코토코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럼 대체 나오키는 언제부터 코토코를 좋아하게 됐던 걸까? 그건 아마 나오키 본인도 모를 것이다. 더는 좋아하지 않을 거란 말에 화가 나서 키스해 버렸을 때 이미 감정이 꽤 깊어져 있었다고 회상하는 것을 보면.

 

가랑비에 옷이 젖듯, 코토코가 한 집에 살기 시작하면서 코토코의 명랑함과 예측불가능함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당황하고 어이없어 하고, 공부 가르쳐주고 같은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면서 어느새 코토코는 나오키의 삶 깊숙이 들어서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신세진 것을 갚을 겸, 다가오는 도쿄대 시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겸, 코토코는 헤드 마사지기를 선물하는데... 유키 말마따나 진짜 거품기처럼 생겼어...

아마 이런 선물도 난생 처음이었을 거다, 나오키에게는.

 

머리가 비상하게 좋고 그래서 공부든 운동이든 별다른 노력 없이도 척척 해내는 나오키는, 삶이 무료하다, 벌써. 18살밖에 안됐는데.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겠고, 그러니 왜 '당연히' 도쿄대에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도쿄대는커녕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보통 이런 진지한 고민없이 당연히 대학을 가야 하는 걸로 알고 그냥 내몰리지 않나. 장난스런 키스가 좋았던 부분 중 하나는, 나오키와 코토코를 통해 누구나 한두번은 겪을 법한 '고민'을 결코 가볍지 않게 그러나 그 무게에 짓눌려 질식하지 않게 그려낸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코토코를 붙잡는 나오키.

 

 

그리고 처음으로 코토코와 '진지한(?)' 대화를 하는 나오키.

 

겉으로는 코토코가 맹목적으로 나오키에게 매달려 나오키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속사정을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겠지), 나오키 본인은 누구보다 잘 알 거다. 코토코가 자신의 삶의 중요한 길목마다 불을 비춰주고 길을 보여주고 머릿속을 정리해주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후반부에 사호코와 결혼하려던 나오키가 마치 목이 졸린 것처럼 답답해 보였던 건, 나오키 본인의 진심과 멀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호코라는 여자가 코토코와 비교하면 나오키에게 의미가 될 만한 부분이 아무것도 없어서였다. 기껏해야 회사를 살릴 수 있는 돈인데, 그건 사실 사호코가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사호코의 할아버지 것이니까, 사호코 본인만의 매력이 없는 것이다, 적어도 나오키에게는.

 

 

나오키에게 코토코는 정말 신기한 사람이고 신비한 세계 그 자체다. 한 번도 코토코처럼 무언가를 얻기 위해 간절해져본 적 없고 노력해본 적이 없는 나오키는, '무언가를 얻으려는 바람'이 강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 더 안쓰러운 건 웬만한 노력으로는 안 된다는 거 - 코토코가 신기할 뿐이다.

 

그렇지만, 아마 내내 고민해왔을 고민 - 왜 대학에 가야 하나, 대학에 가서 무엇을 하나, 대학에 가야 한다면 왜 꼭 도쿄대여야 하나 - 의 실마리를 이번 대화를 통해 나오키는 발견했다.

 

대학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 가능성은 무엇인지 고민하기 위해 가는 곳일 수도 있구나. (그러기엔 삶의 방향이 많이 한정되어 버린 채 시작한다는 함정이 있지만서도...)

 

 

 

나오키는 자기 가방에 부적을 달겠다는 코토코의 말도 흘려 들은 듯 싶지만, 바로 떼어 버리지는 않는다.

 

그 덕분에 나오키는 생애 최대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코토코는 나오키에게 재앙과도 같은 존재로 끝나버릴 것인가.

 

자신의 부적 때문에 나오키에게 닥친 엄청난 일들을 들은 코토코는 심란하기 그지없고, 시험 다음날인 밸런타인데이를 위한 초콜릿을 만들면서도 나오키를 걱정한 나머지...

 

나오키의 시험장까지 따라가려고 한다.

 

 

그러나 하필 급성 맹장염이 이때 찾아오고 만다.

 

내내 코토코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나오키가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에 한 번 더 뒤돌아봤다가 쓰러진 코토코를 발견하는 건 나름 감동...이었다. 신경쓰이고 걱정도 됐던 거라고 우겨야지.

 

그리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코토코에게 달려온다.

 

아마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보내고 가족에게 연락한 다음 시험보러 가는 게 나오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애초에 도쿄대를 왜 꼭 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나오키는, 코토코를 직접 병원에 데려가는 방법을 선택한다. 저렇게 안고 뛰면서. 꽤나 무거웠을 텐데. 저도 모르게 계속 걱정스런 표정으로 코토코를 내려다보는 나오키는 처음으로 조금 다급하고 초조해 보인다. 자신의 시험이 아니라 코토코 때문에.

 

 

나오키 어머니 말마따나, 설사 나오키가 직접 코토코를 병원에 데려갔다 해도 집에 전화해서 병원을 알려주고 시험치러 갔으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결국 나오키는 도쿄대에 별로 가고 싶지 않았고, 코토코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생각을 정리했을 것이다.

 

왜 도쿄대에 가야 하는지 모르겠어, 아직도. 그렇다면 굳이 시험을 쳐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시험을 치면 어차피 합격할 텐데, 합격하고 나서 안 간다고 하면 더 이상할 것이고 집은 더 난리날 텐데 그냥 아예 시험을 보지 말자. 마침 코토코도 쓰러졌으니, 그 옆이나 지키지 뭐.

 

대충 이런 심산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보지만, 코토코와 코토코의 아버지에게는 나오키의 발목을 잡은 짐덩이가 되고 말았다.

 

코토코를 '위해서' 도쿄대 시험을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코토코가 나오키가 시험을 보러 가지 않는 '적당한 핑계'가 되어준 건 맞으니까.

 

 

나오키의 집에 머물 면목이 없어진 코토코는 가출을 감행하는데......................... 아니 아버지랑 의논해서 나갈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무작정 가출이라니, 역시 코토코답다.

 

나오긴 했는데 날은 춥고 갈 데는 없고. 그 와중에 마주친 나오키.

 

이건 볼 때마다 의문이다. 잠이 안 와서 따뜻한 캔커피를 들고 산책하던 나오키와 우연히 마주친 것일까, 아니면 나오키가 코토코 뒤를 따라나온 것일까.

 

따라나온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증거가 없어................... 그렇지만 하필 그 시간에 거기서 마주친 건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더 이상해..............

 

멋대로 생각하고 싶다, 나오키가 코토코 뒤를 따라나온 거라고.

 

 

왜냐하면 나오키가 코토코를 붙잡거든, 가출 못하게.

 

시크하게 안 붙잡는다고 말해 놓고는 코토코가 정말 가려는 것 같으니까 말을 돌리며 붙잡는 기술 보소.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코토코를 붙잡거나 회유하거나 변명하는 나오키 모습이 쭉 나오는데(아무리 그래도 크리스마스 변명은 너무 허접했어 나오키.... 그게 통하는 코토코는 천생연분이야, 너하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정확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늘 이런 식이라 안 그래도 나오키 앞에서는 작아지는 코토코는 더욱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지.

 

코토코가 나오키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던 건, 코토코가 나오키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코토코가 마음을 다잡고 멀어지려 할 때마다 코토코를 기묘하게 붙잡고 놔주지 않는 나오키 때문이기도 했다. 나오키 본인은 인정하려 들지 않을지 몰라도.

 

따지고 보면 이게 자신에게서 멀어지려는 코토코를 붙잡은 나오키의 첫번째 행동이었지 싶다.

 

 

나오키는 친절하게, 너 때문에 도쿄대에 안 간 게 아니라고 설명해 준다.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토난대학에 자동진학하겠다는 건 좀 의심이 가... 결국 코토코의 말 때문이잖아, 대학에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찾아보려고 가기로 했으니까.

 

그러려고 대학을 가는 거라면 굳이 도쿄대에 갈 필요 없고 마침 코토코 너도 있고.....가 정답이겠지만, 따지고 보면 도쿄대 가서 고민해도 되는 사항이긴 하다. 가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코토코는 되게 둔한 듯 보이지만, 때로 아주 나오키의 정곡을 찌를 때가 있는데(문제는 찔러놓고 본인이 모른다는 거), 나오키의 변명은 그 아무리 허접한 것이라도 모두 수긍하고 받아들인다는 거다.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됐을 텐데, 자신이 나오키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놨는지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오키의 묘한 설득(?)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코토코.

 

초콜릿을 기대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이름도 적혀 있지 않은 단지 박스 하나만 보고 그게 자신한테 주는 초콜릿이라는 건 어떻게 안 거냐 나오키.......

 

기대 같은 거 안 하고 신경도 안 쓴다고 하긴 했지만 받고 싶었던 거잖아........

 

초콜릿도 맛없게 만들 수 있는 코토코의 엄청난 능력은 별개로 하고. 늘 이런 식이다, 나오키는. 코토코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기가 그토록 어려웠다, 나오키는.

 

그렇게 어려웠기에 인정하고 나서 코토코와 연애할래요 도 아닌 결혼할래요, 로 내달릴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코토코의 초콜릿을 보는 나오키의 표정은 따뜻하다. 먹지는 못하겠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훈훈하게 흘러갈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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